무속신앙에 대해
지금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굿을 하고 있습니다.밖에 나오면 좋잖아요 날씨도 오늘 좋고 서울 안에도 생각보다 역사적인 장소가 많습니다. 너무 스튜디오만 갇혀 있으면 또 답답하고 밖에 나와서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 가지고 제가 밖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하나하나씩 보면서 걸어가 볼까요.
왼쪽에 호랑이가 크게 그려져 있지 않겠습니까.호랑이 탄신이라고 하는 거죠 단군신화에서도 호랑이가 이렇게 나오잖아요.산에 다 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조선시대 기록들을 보면 인왕산에서는 호랑이가 굉장히 많이 나왔고 호랑이가 많이 나오다 보니까 여기가 더 영어만 곳으로 소문이 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중간중간에 보시면 이렇게 그림들이 자주 보이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왕산과 국사당
여기 근데 너무 좋네요 대박이네요 여기 중국산에서 실제로 죽은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굿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여기는 국사당이 있었던 곳은 아니에요 그냥 여기는 소원을 빌고요 영어만 산이다라는
동네마다 그런 전승들이 있는 곳들이 있잖아요 아까 설명했던 것처럼 산신들이 있다고 해서 민간에서 제사를 지내거나 신앙을 믿거나 이런 경우들이 되게 많았었는데 국사당이 이전하면서 성격이 조금 변하는 거예요 국사당은 원래는
목멱산 지금 남산에 있었거든요 남산이 신성한 산이라 그래서 국사당이라는 거를 짓고 거기서 제사를 지내는 국가의 의뢰인 제사를 진행하는 곳 청약적 제사 유학적 제사 뭐 이런 거는 당연히 종묘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국사당에서는 그것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하는 토속신앙과 약간 결합되어 있는 형태의 국가대사들을 지내는 곳으로 기능을 했었는데 1920년대가 되면은 그때 일제강점기잖아요 그러면 일본도 똑같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해서 지내는 제사가 필요했을 거 아니에요 가장
중앙에 있는 걸신궁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남산에다 쳤습니다 조선에도 이제 그런 걸 만든 거죠 신궁보다 밑에 있는 건데 신사신사들도 우리나라의 신사들도 엄청 많이 짓거든요 일본을 위한 제사의 장소를 지었으니 조선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 같이 있으면은 기분이 나빴던 거죠 일본 입장에서 그래서 이거를 목재를 그대로 뜯어다가 옮기는데 어디다 옮길래라고 이제 막 여러 논의가 있었겠죠 인왕산도 영어만 산으로서 유명하기도 했었고 무학대사가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고 여기를 좀 신성시했다고 하는 어떤 구전 내려오는 설화들도 있고 하다 보니 그럼 여기면 좋겠다라고 해서 남산에서 또 국사당을 1925년에 이쪽에다가 옮기게 되는 겁니다. 기존에 여기에 있었던 무속신앙들이같이 결합이 되기 시작을 하는 거죠.
국사당
딱 여기 올라오면 굉장히 희한하게 생겼거든요.
이상하잖아요 여기 다른 바위들은 다 동글동글하고 이렇게 생겼는데 여기에만 좀 이상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보기엔 어 여기가 뭔가 특별한 장소다라고 하는 그린게 생기니까 여기가 영어마다라고 하는 이야기들이 전례가 되게 되고 그래서
여기서 이제 이렇게 기도를 드리는 고시였는데 국사당이 이쪽으로 옮겨지고 그 옆에 이제 선바위랑 같이 이렇게 묶여지게 되면서 지금은 인왕산에서는 이 두 공간 복사당이랑이 선바위가 가장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고 여기를 중심으로 해가지고 주변에 많은 굿당들도 형성이 되어 있다 보니까 어떻게 보면 인왕산에 중심점이 되는 공간이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근대사회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무속신앙이라고 하는 게 조금은 천대를 받는 어떤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됐었던 거 같아요. 근데 사실 그 분위기는 조선시대에도 있긴 있었습니다. 무속인들은 천민이었어요 천민 왜냐면 성리학은
이런 성리학이 굉장히 막 케케묵은 학문인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은 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이에요 그래서 성리학이 한국 사회에 들어올 때 큰 역할을 했었던 여러 책들 중에 정도전이 쓴 불씨잡 변이라는 책을 혹시 아시나요. 불시잡변 뭘까요. 불씨 석가라는 인간이 쓴 잡스러운 이야기이라 성리학적 기준에서 봤을 때 불교라고 하는 건 학문일 수 없는 거예요. 비이성적인 성리학자인 겁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 무속인도 똑같은 거죠 무속신앙도 굉장히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행위들이다 보니까 굉장히 천대받기는 했어요. 근데 사회로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죠 일본 제국주의라고 하는 통치기관이 있는 있잖아요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허락한 종교만 종교인 거예요 일본의 전통적인 종교라든지 기독교까지는 허용을 하거든요. 그 이외에는 유사 종교라는 이름으로 배척을 해요. 이러한 흐름이 해방 이후에도 똑같죠 미군정이 시작이 되고 그 미군정 이후에 이승만 정권기로 하면서 당연히 어떤 미국 문화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당연히 한국의 전통 무속 신앙이라고 하는 거 자체가 터부시 됐었던 거죠 그런 과정에서 1970년대가 되면 성격이 좀 많이 변합니다. 갑자기 변해요. 문화재 관리라고 하는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을 하거든요 .왜냐면 1970년대가 되면 한국의 민족문화라고 하는 걸 부흥시키려고 하는 분위기가 잃어요.한국 민족의 어떤 우수성 뭐 이런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럴 때 국가에서 무속 신앙을 본 거죠.봤더니 한국적인 것도 있는 거예요.그럼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라고 하는 고민 속에서 몇몇 무속 신앙 중에 한국적 특 있겠다 싶은 것들을 몇 개 추리고 그걸 문화재 안으로 넣어 버립니다. 무형문화재라는 이름 그래서 공인된 한국의 민족 무속 신앙이 되는 거예요.
사실 비판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원래 한국의 전통에서 봤을 때 마을에서 지내는 어떤 수많은 제사들이나 굿이나 많은 문화들이 있었는데 그거는 다 거세대 버리고 국가에서 허락한 무형문화재 이거 아니면 다 이렇게 돼 버린 거니까 제일 대표적인 게 밤섬이에요.
근데 70년대 때 밤섬은 무형문화재로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에서 픽을 안 한 거죠. 거기 있는 거 그래서 방송을 폭파시키면서 거기 있는 분들을 통으로 어디에다가 옮겨요.
와우산 지금 홍대 옆에 거기 있는 마을로 이렇게 옮기거든요. 와우산 자락에 있는 시민아파트로 이주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안 돼요.7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어떤 전통 무속 신앙이라고 하는 거 자체가 훨씬 더 터부시 된 거죠. 국가가 허락한 게 아닌 이상 그러다 보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 원래 굉장히 근처에도 있었던 그런 문화였는데 산소 깊은 곳으로 간다거나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공간으로 이렇게 조금 외곽으로 이렇게 버려지듯 가버린 것 같아요. 그게 좀 어떻게 보면 좀 안타까운 일이죠
최근 무속신앙
여기 와보면 그런 게 느껴지잖아요 아 인간이 할 수 없는 무엇인가 산을 인간이 만들 수 없고 바다를 인간이 만들 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시절에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어떤 존재들에 대해서는 신성시하는 건 어떻게 보면 인간의 자연적인 섭리인 거 같아요 더 큰 존재를 찾는 거죠. 산 바다 태양 뭐 이런 자연적 존재들에게서 신격화를 시킴으로써 의지하고 그런 분위기들이 한국사회 안에서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 잡았던 거 같아요 그건 뭐 사실 고조선에서도 있었고 그 이후에 내려오는 여러 다양한 나라들에서 계속적으로 해왔던 겁니다.
서울에 있는 산들 다 그렇죠 아까 남산 같은 경우에는 목멱산이라고 불렸었던 시절에 좀 보이지 않습니까
딱 봐도 인왕산 있고 도봉산도 그런게 좀 있고요 그다음에 강이 한강에도 많아요. 한강변에도 굉장히 많았어요.
한강 변 따라서 굿당들이 이렇게 있거든요 거기도 마찬가지인 거죠 자연에 대한 어떤 그런 것들이 있었으니까 이런 대자연을 향한 어떤 인간의 경의힘들이 영향을 미쳐서 지금 무속인 분들도 산속에 들어온다거나 아니면 바닷가에 있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여기 진짜 여긴 대박이다 오늘 인왕산에 대한 이야기 다들 어떠셨습니까. 사실 오늘 나눈이야기는요 정말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 오늘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들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속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월 대보름과 하회별신 굿 (0) | 2024.04.02 |
---|---|
민속 신앙의 정월 대보름 (0) | 2024.04.02 |
민속학과 한국 민속 무속신앙 (0) | 2024.04.01 |
파묘 영화 속 민속학 살펴보기 (0) | 2024.03.31 |
민속학의 개념 (0) | 2024.03.30 |